YOUAE*^^* 공연 or 만화/youae*^^* 연극리뷰

무엇을 할것인가

youae*^^* 2014. 5. 18. 14:08

출처: 플레이디비 & 인터파크 티켓

 

명품극단의 10년 프로젝트 죄와벌 시리즈 완결편, <무엇을 할 것인가>

 

- 2005년 창단 이후 명품극단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에 대한 무대적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죄와벌」로부터 지금까지 <죄와벌-죄를 고백함>, <푸르가토리움-하늘이 보이는 감옥(獄)>, <THE GAME-죄와벌>에 걸치는 완성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었다.

 

- 명품극단은 「죄와벌」을 무대화하면서 단순하게 소설의 각색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선택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함께 고민하고 분석해왔다. <죄와벌-죄를 고백함>에서는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의 3번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본래적 가치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진행했으며, <푸르가토리움-하늘이 보이는 감옥(獄)>에서는 소설의 한 부분인 마르멜라도프 가의 부박한 삶의 모습을 쫓으면서 냉혹한 사회의 풍경을 그렸다. 그리고 <THE GAME-죄와벌>에서는 범죄자와 그를 쫓는 수사관의 치밀한 심리전을 통해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 심리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조명한 것은 물론이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거짓된 윤리와 도덕에 대해 비판했다.

 

- 명품극단의 2014년 정기공연인 <무엇을 할 것인가>는 죄와벌 시리즈의 완결편으로서 그동안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냉혹하게 직시했던 인간 존재의 가치 몰락과 현대 사회의 병폐들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자, 제목이 주시하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의 수많은 ‘죄’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처절한 고민의 결과를 관객과 공유하고자 한다.

 

- 이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인간사회의 수많은 병폐와 인간존재의 가치 상실의 원인을 ‘알료나 이바노브나’라는 인물을 통해 제시코자 하는데, 알료나는 그런 면에서 연극의 한 등장인물에서 나아가 현대사회가 대면하는 수많은 ‘악’의 총체적 근원으로 수렴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악’과 대면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전시하고 결국 이러한 ‘악’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인간이 그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냉철한 자기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제 작 의 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생각’하는 힘을 주는 예술의 창작

 

- 언제 어디서든 빠른 일 처리와 빠른 결과물을 원하는 현대 사회에서 ‘빠름’은 미덕과도 같아졌다. 그 대가로 인간은 점점 생각하는 고유의 힘을 잃어버려가고 있다.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생각’의 시간, 사고의 시간이 사라지고 소비의 시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을 위한 것일까 과연 그것은 행복한 것일까

 

- ‘빨리 빨리’가 모토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명품극단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 인간이 어디로 가는 지 의심하고 물어야 하는 시간임을, 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무대를 통해 설파하고자 한다. 연극을 통해 빠른 속도의 걸음을 멈추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갖고자 한다. 명품극단은 이것이 예술의 존재가치이자, 이것이 오늘날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예술 나아가 연극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을 할 것인가>는 어쩌면 다소 거칠고 날것이며 난폭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러한 사포처럼 거친 표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기 자신’과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예술 작품의 관객과의 ‘열린 소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명품극단은 '독특하고 차별화된 무대와 연출'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신선하고 깊이 있는 무대와 함께하는 뜻 깊은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예술과 대중의 접점 찾기, 고전을 바탕으로 한 ‘넓고 깊이 있는 실험’의 도전

 

- 명품극단은 고전을 전문적으로 무대화 하는 단체로서, 현대연극에 있어서의 실험과 고전텍스트와 관객의 만남에 있어서의 이러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며 무대 위에 새로운 생명력으로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만들고자 한다.

 

- 얼핏 생각하면 고전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인상을 갖기 쉽다. 하지만 고전은 인류의 고단한 역사를 걸쳐 읽고 또 읽히며 그 예술성과 사회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을 의미한다. 또한 학교 교육에 의해 사람들은 고전을 자세히 잘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의 내용과 특징을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전의 현대적 무대화는 관객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 이는 명품극단의 지난 공연에서도 충분히 검증 받은 지점이기도 하다. 명품극단은 고골 3부작 , 한국문학 3부작 , 죄와벌 시리즈 , 체홉 시리즈 등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체홉과 같은 세계 문학과 김유정, 이효석, 이문구 등 한국 문학을 끊임없이 무대화해왔고, 이들 공연은 연일 극장을 찾는 관객들로 넘쳐나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등 그 대중성과 예술성을 인정 받아왔다.


명 품 극 단 이 바 라 본 오 늘

 

오늘날 현대인이 처한 ‘현실’, 도스토예프스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 먹고 사는 한 고리대금업자와 이를 벌하기 위해 살인을 감행하는 한 지식인 청년. 소설 「죄와 벌」 속, 인간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며,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위해서는 범죄마저 감행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발 딛고 서 있는 땅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경제적인 이유나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로 생명은 짓밟히고 인간성은 개나 줘 버리는 세상, 한순간의 거센 욕망으로 한 인간의 생명과 삶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세상이며 결국 <무엇을 할 것인가> 속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 명품극단은 이와 같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을 목적으로 ‘관객들의 참여’를 작품의 시작부터 유도할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극장의 로비에서 관객들은 무대 위에 등장할 배우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들은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본 잔혹한 현대사회의 초상으로서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어떤 시대보다 고도의 지성을 겸비한 현대인으로서의 ‘나’와 ‘당신’이 왜 이것이 침묵하는 지에 대한 질문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하기 시작할 것이다.

 

- 관객들은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도끼를 하나씩 들어 무대 세트에 직접 도끼질을 하게 될 것이다. 수없이 찍히는 도끼 소리는 미완성 상태였던 무대를 점차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이는 곧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일상에 지쳐 지성인으로서의 ‘인간-라스콜리니코프’를 잊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라스콜리니코프를 불러 낼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시작은 곧 이 연극의 궁극의 주제로 나아가는 지점일 것인데, 명품극단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현대사회에 숨어살고 있는 또는 스스로가 잊어버리고 있는 현대인간의 내면 속 라스콜리니코프의 현현을 목도할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연극은 묻고자 한다. 우리시대의 영웅으로서의 라스콜리니코프, 당신은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당신을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부 [퍼포먼스]

 

- <무엇을 할 것인가> 시작의 [퍼포먼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오늘날의 시간과 조우케 하는 일종의 제스처로 배우들은 연극이 시작되기 전 로비에서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관객들을 연극 속에 수렴시키는 것과 동시에 도스토예프스키적 인물들을 2013년의 세상에 소개하는 하나의 의식을 갖는다. 라스콜리니코프와 알료나와 연극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로비에 앉아서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 가운데에서는 신문을 읽는 사람도 있고, 배고픔을 잊으려고 장난스런 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어딘가를 바쁘게 간다.

 

- 관객들은 로비로 들어서기 전에 유인물을 받게 된다. 받은 유인물에는 그 안에는 오늘 우리사회를 놀라게 했던 잔혹한 사건과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사건들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이것은 저 옛날 피스카토르의 정치연극에서 행했던 시작의 퍼포먼스에 다름 아니다. 이 가운데 신문을 들고 있던 사람이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배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관객들에게 그냥 앉아서 있을 수많은 없음을 설파하면서 자신의 몸속에 저장되어 몸을 상하게 만하는 분노를 꺼내 들자고 말한다.

 

- 사람들은 무대에 들어서면서 앞에 쌓여 있는 수백개의 도끼를 대면한다. 관객처럼 숨어 있는 배우들이 주춤주춤 눈치를 보듯 도끼를 들어 무대 위에 세워진 문에 도끼를 찍는 행위를 이어간다. 도끼를 찍는 행위는 금기시된 것에 대한 일종의 도전의 행위에 다름 아닐진대, 관객들의 퍼포먼스는 곧 무대 위에 수많은 도끼가 꽂힌 설치미술의 행위가 된다. 이 퍼퍼먼스의 마지막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등장해 마지막으로 남은 도끼를 들고 무대 위를 걷기 시작한다.

 

2부 [연극]

 

- 공연이 시작되면 알료나의 전당포를 배경으로 알료나가 리자베타를 혹독하게 폭행하는 장면과 모욕하는 행위들이 이어진다. 알료나가 리자베타를 폭행하고 모욕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바로 ‘돈’ 때문이다. 알료나는 보험금과 위로금을 받기 위해 리자베타를 목 졸라 기절시키기까지 한다.

 

- 알료나가 리자베타를 학대하는 동안, 라스콜리니코프는 걸음걸이는 천천히 단호하게 무대 주위를 밟아간다. 그는 총 730 발자국을 걸어 알료나의 집 앞에 도착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소설 속 알료나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만남이 진행된다. 연극 속 알료나와 라스콜리니코프의 만남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내러티브 면에서 많이 닮은 지점이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인간 사회 총체적 ‘악’으로서의 알료나의 형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장면 만들기일 것이다. 알료나는 돈을 빌리러 온 라스콜리니코프를 희롱하다가도, 그에게 단 몇푼 밖에 빌려주지 않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당포를 떠난다.

 

- 공원에 도착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알료나의 ‘악’에 추악함을 느끼며 구토를 하는데, 그의 곁으로 술에 취한 여인이 다가온다. 만취한 그녀는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한 모습인데, 라스콜리니코프는 흑심을 품고 그런 여인을 쫓아온 행인과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여인은 술에 취한 채로 다시 길을 떠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여인의 운명을 짐작해보며,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세상의 악이 더욱 만연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 라스콜리니코프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 전당포로 찾아간다. 그리고 도끼로 알료나를 살해한다. 그런데 그 순간, 리자베타가 살인을 목격하게 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어쩔 수 없이 리자베타 마저 살해한다.

 

- 살인 뒤, 라스콜리니코프는 환상 속에서 알료나와 리자베타를 다시 만난다. 자신을 ‘살인자’라 부르는 알료나에게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이야기한다.

 

3부 [대화]

 

- 작품의 문을 닫는 [대화]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인물로서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수많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감정적 파토스를 날리고 있는 지성의 상징으로서의 오늘날의 라스콜리니코프의 만남과 대담을 통해 ‘지성’이 사회에 임해야 하는 자세, 즉 연극의 제목이나 다름없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다.

 

- 이 장면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2명이다. 실제 앞에서 연기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들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 마련된 의자에 마주 앉아 오직 그들만을 비추는 조명을 받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라스콜리니코프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읽은 기사는 무엇입니까 ”, “그 곳에서 당신이 발견한 이 세상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 “당신이 도끼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 “당신의 살인으로 변하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과거로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당신은 다시 도끼를 빼들 수 있습니까 ”

 

- 라스콜리니코프는 토론을 이어간다. “당신은 나와 당신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 “당신이 생각하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영웅은 무엇입니까 ”, “사회의 지성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당신은 도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 “당신의 일상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 “세상은 무엇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 “그것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

 

도스도예프스키의 작품에는 인간사의 어둠과, 정의의 표방하는 면이 두드러진다. 죄와벌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의 시대상과

크게 틀리지 않다.  악과 정의  공존하는 사회,   고전에서는  라스콜리니프는  1명이었지만,  2014년  라스콜리니프는 2명이다.

자식과 또다른 자신의  라스콜리니프  ㅡ.ㅡa 몇달전 관극했던 "적의 화장법" 연극이 생각난다. 그 극에서도 한남자와  그리고 또다른 자기자신의 죄책감을 대면하게된  이야기였다.  난 그극을 보면서  무서웠고, 지금 다른 내자신의 어떤모습 이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무엇을 할것인가" 이극에서는  라스콜리니프 (라스)와  또다른 라스는  관객의자리로 돌아가  라스를 지켜본다.

흥겨운 디제잉과 사람들은  춤을 추고 즐긴다. 하지만 표정은 어둡다.  그리고  그들속에서 라스는 음악을 중단시키고  그들에게 일침한다.

이 썩어가는 세상에서  왜 이러냐고...  관객들을 향해 당신은 누구며, 오늘 일어나는 일을 보셨습니까.하며 말을 건다.

** 세상을 향한 외침 18**  시작하면서  극은 시작된다.

 

고전속에  전당포 할멈과  그녀의 조카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시계를 맡기러온 라스는  제대로된  돈도 못빌리고, 그나마 이자까지 떼이고,  하숙집 주인의 폭언과비하,  폭력등의 일을 보게되고,  다시 전당포할멈을 찾아갔지만  돌아오는건 멸시였고,  분노에  할범을 도끼로 살해한다.  조카까지도..... 

 

잠시 어둠이 찾아오고,  죄와벌속의 부조리한 인물들은  라스를 지켜보며  비웃는다. 그리고 관객속에 있던  내면속에 라스는  그에게 말을건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으며  악행은 계속 이어지고, 사람들은 고통당한다.  두명의 라스는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지만  명백한 결론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마디  " 무엇을 할것인가? " 의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연극+디제잉+설치미술 등이 어우러진  신선한 연출이었다.  고전의 재미있는 점은  연출과 해석에 따라서  무한대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것이다.  딱딱 할 수 있는 죄와벌이  설치미술과 디제잉이 만나면서 새로운 작품으로  다가왔고,  관객들에게 더 쉽게 다가올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도스도예프스키의 라스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의미도...

 

 

 

 

 

 

 

 

'YOUAE*^^* 공연 or 만화 > youae*^^* 연극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템페스트  (0) 2014.05.26
미스 프랑스  (0) 2014.05.24
아일랜드  (0) 2014.05.18
M버터플라이  (0) 2014.05.18
여기가 집이다  (0) 201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