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고 격한 비바람 같았던 우리 역사와 함께 서서 고뇌했던 시인 김수영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과 현실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남산예술센터 2014 시즌 마지막 작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우리 현대사를 온몸으로 마주하며 살아갔던 시인 김수영의 생애와 시를 모티브로, 한국 현대사와 동시대가 만나는 지점, 예술가와 우리 자신이 만나는 순간들을 다큐멘터리 드라마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에 이은 드림플레이 테제21의 두 번째 시리즈인 이번 작품은 단순한 ‘시인 김수영의 일대기 재현’이 아니라 김수영을 매개로 우리가 겪고 있는 동시대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를 통해 문학과 연극의 경계를 지우고, 통합적인 인문학적 시선과 관점에서 시대와 연극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의 시작
작가 재엽은 시인 김수영에 관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재엽은 배우들을 설득하여 그들 안의 김수영을 찾아가는 공연을 만들고자 한다. 아직 대본도 없는 상태에서 배우들은 선뜻 공연 출연을 결정하긴 힘들다. 어쨌든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면 김수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김수영의 시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광복 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삶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김수영을 만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자신 안의 김수영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로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구속과 억압을 거부한 시인 김수영과 온전한 나로 살고 싶어 하는 우리
우리 예술가들 가운데 자신의 예술행위나 예술작품이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예술가가 몇이나 될까? 그런 예술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김수영이다. 김수영의 시는 김수영 그 자체이다. 김수영은 한 평생 그 누구도 아닌, 김수영으로서 살았다. 김수영은 김수영답게 살기 위해서 온몸으로 시를 쓴 시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원하는 ‘온전한 나’로서 살고 싶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다름없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4.19와 5.16을 온몸으로 겪은 김수영의 생애(1920~1968)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생애도 그리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온전한 나 자신을 발견하기엔 이미 적잖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대사를 관통해 온 김수영은 무엇보다도 김수영으로서 살아가려고 애쓴 인문주의자였다. 그의 시는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생애에 대한 기록이자 증거이다. 김수영의 투명한 시는 시인의 영혼과 육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 또한 우리 자신으로 살고 싶다. 김수영의 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우리의 소망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 안의 김수영을 만나게 되는 순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것이다. (작/연출 김재엽)
항상 공연장을 자주 갔었는데 올해는 올 가을이후로 잠시 쉬었다가 초겨울에 오래간만에 연극 한편을 만나러 갔다. 일제강점기부터 60년대 초까지~ 일제치하, 해방 후 불안한 정세, 한국전쟁 그리고 4.19, 5.16 등...
한국사회에서 제일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낸 시인 김수영, 그리고 그의 시에는 지금의 현재와 별반 다를게 없다.
한동안 공연을 통해서 내 자신의 희노애락을 찾으려고 했었다. 올해 초에는 정체되어 있는 나에게 전환점을 주고 싶어서 일본, 태국에서 자유여행을 다니며 그동안 난 무엇을 한건가 하고, 많은 생각하고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
어제 본 연극에서도 김재엽 연출의 내안의 김수영을 찾아서와 똑같은건 아니지만 비슷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세상돌아가는게 내가 원하는데로 되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것이 진리다.
2014년 김재엽연출은 시인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내안의 김수영, 그리고 우리안에 김수영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을까. 아무도 출연하지 않을려고 했지만 배우 강신일을 통해서 김수영의 파란만장한 삶속에
들어가면서 그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며, 현재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에 비수를 꽂는다.
문화와 문학은 시대에 따라서 운명이 바뀐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정치적 이념으로 많은 문인들은
혼란을 겪었고 분단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시인 김수영은 급변하는 정세속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지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문의 문인들과 이념과 사상에 분단, 한국전쟁의 시점에서 정부말만 믿다가 의용군에 끌려가서 가까스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왔건만, 서울은 초토화 되었고 오히려 반역자의 낙인으로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온갖 박해와 석방 후에도 번역일을 하면 자신만의 시집을 출판한다. 그리고 그 시집속에는 김수영이 걸어온 길과
언론의 불평등함을 토로한다.
그래도 그의 시에는 절망에서 희망을 찾게 하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 시대에 살아남을려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 된다지만.... 친일파들은 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4.19, 5.16 그리고
현재시점에도 어떻게든 대물림 하면 살고 있다. ㅡ..ㅡ 독일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데 60년이 걸렸지만.
오히려 그 과오를 지금 세대에게 교육하고, 반성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그래서 김수영은 시인은 그 답답함을 마지막까지 시를 통해 토로하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시인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